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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있는 고통 타투의 통증이 중요한 이유
타투의 통증은 왜 중요할까. 호주의 대학들에서 10년에 걸쳐 이루어진 심리학 연구는 타투를 받는 통증에 대해 묘한 사실을 시사한다. 통증은 이미지의 대가가 아니다. 이미지가 의미를 갖게 되는 메커니즘이다.
타투 시술에서 가장 많은 것을 드러내는 순간은 첫 라인도, 마지막 컬러 작업도, 끝에 들어 올리는 거울도 아니다. 거의 보이지 않는 작은 찰나다. 아마 40분쯤 지났을 무렵, 바늘이 여전히 움직이는 가운데 고객의 얼굴이 바뀐다. 어깨가 내려간다. 숨이 느려진다. 스튜디오 여기저기를 헤매던 눈길이 조용한 내면의 어딘가에 머문다. 무언가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좋은 타투 아티스트들은 이 순간을 안다. 그들은 이를 ‘턴’이라 부르기도 하고, ‘드롭’이라 부르기도 하며, 조금 덜 시적으로는 “이제 들어갔네”라고 말한다. 통증이 결과를 가로막는 장애물이기를 멈추고 결과의 일부가 되는 순간이다. 고객은 더 이상 과정을 견디고 있지 않다. 그 과정을 통과하고 있다.
오랫동안 이것은 하나의 기벽으로 치부되었다. 마조히즘. 아드레날린. 타투 하위문화 특유의 기묘함. 그러나 그 상당 부분이 지난 10년 동안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학들에서 발전해 온 일련의 심리학 연구는 다른 것을 시사한다.
알고 보니 통증은 실질적인 일을 하고 있다.
함께 겪은 통증에 관한 Bastian의 실험
2014년, 당시 뉴사우스웨일스 대학교(University of New South Wales)에 재직했고 현재는 멜버른 대학교 심리과학부(Melbourne School of Psychological Sciences)에 있는 Brock Bastian 부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Psychological Science에 맥이 빠질 만큼 담백한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Pain as Social Glue: Shared Pain Increases Cooperation(사회적 접착제로서의 통증, 함께 겪은 통증은 협력을 높인다)이다.
실험은 영리하다 싶을 만큼 단순했다. Bastian과 동료들은 학부생 참가자들을 소그룹으로 나누고, 그중 일부에게 가벼운 통증이 따르는 과제를 함께 수행하게 했다. 얼음물에 손을 담그고, 힘든 스쿼트 자세를 버티고, 세 번째 실험에서는 버즈아이 칠리를 통째로 하나 먹었다. 다른 그룹들은 비슷하지만 통증이 없는 과제를 수행했다. 그 후 모든 그룹이 경제적 협력 게임을 했다.
통증을 함께 겪은 그룹은 눈에 띄게 더 협력했다. 동료 참가자들에게 더 가깝게 느낀다고 답했고, 그룹을 위해 개인의 보상을 기꺼이 포기하려 했다. 통증은 즐거운 공동 경험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 낯선 이들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같은 해 후반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Review에 실린 후속 리뷰 논문 The Positive Consequences of Pain(통증의 긍정적 결과)에서 Bastian과 공동 저자들은 더 폭넓은 증거를 한데 모았다. 수십 건의 연구에 걸쳐, 스스로 선택한 통증은 3가지 일관된 효과와 연관되어 있었다. 뒤따르는 감각적 즐거움을 높였다. 자기 조절과 의미의 경험을 키웠다. 그리고 사회적 유대와 집단 소속감을 깊게 했다.
적절한 조건에서 통증은 경험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응축한다. Bastian, Jetten & Hornsey(2014)에서
통증 연구가 당신의 타투에 말해 주는 것
세속화된 서구의 삶에서, 성인이 영구적인 상징적 결과와 맞바꾸어 통제되고 목적이 있으며 몇 시간에 걸친 고통스러운 경험을 스스로 선택하는 관행은 이제 몇 남지 않았다. 타투는 그중 하나다. 현대 도시에서 이와 정말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은 달리 없다. 마라톤이 가깝다. 출산은, 그것을 겪는 이들에게는 더 가깝다. 그러나 타투는 유일하게 자발적이고, 유일하게 반복할 수 있으며, 유일하게 눈에 보이는 흔적을 남기도록 설계되어 있다.
Bastian의 연구가 옳다면, 그리고 이후 10년에 걸친 후속 연구들은 그것이 대체로 옳은 방향에 있음을 시사하는데, 타투를 받는 통증은 경험의 결함이 아니다. 하나의 기능이다. 이미지의 의미를 그것을 지닌 몸에 용접하는 메커니즘인 것이다.
신경화학을 생각해 보자. 바늘이 피부에 닿는 순간부터 신경계에는 고통에 대한 몸의 두 가지 거대한 내적 반응이 밀려들기 시작한다. 먼저 아드레날린이 집중을 날카롭게 하고 주의를 넓힌다. 이어 엔도르핀이 모르핀과 같은 오피오이드 수용체에 결합해, 장거리 달리기 선수들이 ‘러너스 하이’로 아는 상태를 만들어 낸다. 시술이 이어지는 동안 몸은 조용히 스스로에게 약을 투여하고 있는 셈이다. 타투 아티스트들이 3시간째 접어든 고객의 얼굴에서 보는 행복감도 아마 그 일부일 것이다. 흔히 ‘타투 중독’이라 불리는 현상도 이것으로 설명될지 모른다. 의학적 진단명은 아니지만 실제 관찰에서 나온 말이다. 그 상태를 한 번 경험한 사람은 다시 경험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화학은 이야기의 절반일 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인지다.
의미를 만드는 기계, 혹은 노력이 가치를 더하는 이유
사람은 더 애써 얻은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심리학자들은 이 사실을 60년도 더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 효과를 노력 정당화라고 부른다. 가구 조립에서 이름을 빌려 온 가까운 사촌으로 이케아 효과가 있다. 직접 조립한 책장은 조금 삐뚤어졌더라도 완제품으로 산 똑같은 책장보다 더 값지게 느껴진다.
통증은 가장 순수하고 가장 희석되지 않은 형태의 노력이다. 바늘이 1분에 최대 3,000번 피부를 찌르는 동안 4시간을 앉아 있을 때, 사람은 이후 몸에 지니게 될 이미지의 값을 돈이 아니라 불편함으로 치르고 있다. 그리고 보상 없는 고통을 싫어하는 뇌는 치른 대가에 걸맞도록 결과의 심리적 가치를 조용히 끌어올린다.
고통스러운 6시간 끝에 새긴 기념일 타투가 노트북에 붙인 같은 날짜의 스티커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미지는 같다. 대가는 같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견뎌 낸 것을 꼼꼼히 기록해 두는 몸은, 지니기 위해 더 큰 대가를 치른 흔적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타투 통증의 사회적 측면
이 연구에는 마지막 차원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타투 문화가 언제나, 고집스러울 만큼, 단순한 관행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였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고통을 사회적 접착제로 본 Bastian의 연구는,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함께 나누면 낯선 사람들끼리라도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강해진다는 것을 시사한다. 군부대가 그토록 끈끈한 유대를 맺는 이유, 인류의 수많은 문화에서 종교 의식이 자발적인 고통을 동반하는 이유, 대학 동아리의 신고식과 마라톤 결승선이 그 특유의 눈물을 자아내는 이유의 일부가 여기에 있다. 다른 이들과 함께 고통을 겪은 몸은 그들을 피붙이로 새겨 둔다.
타투 스튜디오는 신전이나 연병장과는 전혀 닮지 않았지만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고객, 아티스트, 그리고 흔히 구석에 앉아 곁을 지키는 친구가 상징적 결과를 향한 시련을 함께 치른다. 그것이 끝나면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자신들보다 오래 남을 흔적을 만드는 일에 참여한 셈이 된다. 타투가 그것을 만든 아티스트에 대한 평생의 충성으로 이어지는 일이 그토록 잦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디자인에 대한 감사만이 아니다. 감사보다 더 조용하고 더 오래된 무언가다.
애프터케어를 다시 보게 되는 이유
이 모든 것에는 실질적인 귀결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SKINGRAPHICA®의 지금 모습을 만든 이유다.
타투의 통증이 부수적인 비용이 아니라 의미 그 자체의 일부라면, 타투의 케어는 미용상의 뒷전이 아니다. 바늘이 피부에 닿은 순간 시작된 과정의 연장이다. 시술 후의 며칠은 몸이 물리적 기억과 상징적 기억을 하나로 굳혀 가는 시간이다. 그 날들을 기저귀 발진 크림 한 통으로 보낸다면, 방금 일어난 일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좋은 애프터케어는 단순한 관리가 아니다. 치른 대가에 대한 존중이다. LOCK의 출발점이 바로 그 생각이다. 보호 커버를 뗀 뒤 시술 후 14일간의 회복기 동안 피부를 돌보도록 만들어졌다.
조용한 논증
여기서 살펴본 어떤 연구도 통증이 좋다거나, 고통을 그 자체로 추구해야 한다거나, 타투가 인류가 고안해 온 수많은 다른 의식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저 통증이 스스로 선택되고, 기꺼이 감내되며, 상징적 결과와 결합될 때, 같은 행위의 통증 없는 버전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무언가를 낳는다고 말할 뿐이다.
피부에 새긴 이미지는 이미지만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지에, 그것을 위해 앉아 있던 4시간을 더하고, 늦추는 법을 배운 호흡을 더하고, 떠나고 싶을 때도 의자에 머문 작은 용기를 더하고, 머신을 쥔 사람과 맺은 조용한 유대를 더하고, 그것을 견뎌 내고 반대편으로 빠져나와 그 사실의 영구적인 기록을 지니게 되었다는 작고 사적인 앎을 더한 것이다.
이미지가 무엇을 말하든, 통증도 무언가를 말한다. 이것은 아플 만큼 중요했다고.
그래서 시술이 기억이 된 지 한참 지난 늦은 밤, 사람들이 자신의 타투를 바라볼 때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이 그저 이미지인 경우는 드물다.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한 장의 영수증이다.



